이명미 Korea, 1950

Overview

이명미는 1972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부터 국전을 비롯하여 《앙데팡당전》, 《서울 현대미술제》, 《한국실험작가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일찍이 화단에 등단했다. 1974년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대구 현대미술제의 창립 멤버이자 최연소 여성 미술가로 참가하면서 남성 중심의 체계 속에서 존재가 두드러졌다. 실제로 70년대 중반까지 이명미는 스펀지를 불에 태우거나 캔버스에 비닐을 부착시키는 등 물성을 이용한 단색화 스타일의 실험성 강한 작품을 제작했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갈 곳도,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마침내 이명미는 논리적 개념을 중요시했던 기존의 미술 경향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자신의 감성과 직관에 따라 새로운 회화적 언어를 구축하고 예술적 표현의 즐거운 관능으로 향하는 자유로운 길을 열었고, 이것이 ‘놀이-PLAY’의 시작이었다.

 

놀이’는 이명미의 작품 제목을 비롯하여 1977년 첫 개인전의 전시 타이틀로 붙여진 후로도 수많은 개인전의 타이틀로 사용되어 왔으며 40여 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중요한 작업 요소이며 삶의 원천이다. 이명미의 ‘놀이’는 기존의 추상미술이 추구했던 현시할 수 없는 영적 정신세계, 무한의 공간, 유토피아식 발상에서 해방된 것을 축하하는 폭죽을 터뜨리듯 단색화와 개념 미술의 시대에 파격적인 컬러와 사유의 자유로움을 제시하고 삶에 대한 강렬한 생명력과 새로운 가치 기준을 암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조였다. 그녀에게 놀이는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해지는 삶의 조건 속에서 예상치 않게 다가올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우연에 대한 긍정은 세계와 삶에 대한 긍정을 의미한다.

 

이명미의 작품에는 동물과 사람, 식물 등 생명을 가진 존재들부터 집과 의류, 음식, 가구 등의 사물, 그리고 숫자와 문자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요소가 회화적 언어를 형성하고 있다. 이명미는 사회에서 가치를 잃고 소외된 일상의 평범한 대상들을 강렬한 원색 위에 원근감도 없이 아이처럼 단순하고 명백하게 표현한다. 그러한 기호적 이미지와 함께 복합적으로 등장하는 이명미의 '문자 TEXT'는 그림 속 모방된 이미지를 지칭하거나 일어나는 상황을 그대로 언어로 서술하고 있다. 이렇듯 이명미의 작품은 일면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정서로 돌아가는 근원주의적 태도로 세상을 바라본 듯 하면서도, 일상 생활의 소재를 화려한 컬러와 반복적 패턴으로 표현하는 팝아트적 요소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 진리보다는 주관적 감성으로 삶의 본질을 표현했던 표현주의도 상기시키며 모더니즘과의 관련성을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내지만, 그녀의 작품에서는 어떤 미술 양식의 범주에도 가둘 수 없는 자유로움과 해방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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