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아: In the middle of the forest

17 September - 20 Novembe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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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우손갤러리의 개인전을 위해 최근 새롭게 제작된 박경아의 시리즈 <Walk 워크>를 마주 했을 때 느껴지는 내면의 역동성과 감각적인 색채의 자유로움에서 지금까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작가 고유의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에 나는 다소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최근 박경아를 매료시키는 것은 자연과 추상 사이에 존재하는 회화적 공간(영역)에 관한 것이다. 자연自然, Nature은 박경아의 회화 속에서 현실과 인식이 상호교차하며 활성화되는 가상의 영역을 은유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투영된 상징적 매개체로서 초기에는 어두운 숲이나 커다란 나무의 그림자 또는 빛과 그림자가 우연히 만들어낸 자연의 공간 등을 표현한 반추상적 회화가 주를 이루었다. 특히 ‘숲’은 박경아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모티브로서 전설이나 신화에서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뚫고 들어가야 하는 자연의 비밀을 담고 있는 운명의 영역이자 시험의 장소로 은유적이며 상징적 의미를 포괄하고 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득한 숲의 형상을 묘사하는 일련의 작품에서는 창문이라는 시각과 통찰을 상징하는 감각기관을 경계로 내부와 외부로 구별된 모호한 두 공간이 마치 개인의 삶과 현실적 운명 사이의 비극적 거리를 암시한다. 그리고 창문 앞에 드리워진 커튼은 세상을 보는 시야를 가리는 주관적 선입견 혹은 지식과 환상이라는 의식과 무의식의 불안정한 경계를 나타내면서도 열린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이 커튼을 날릴 때마다 시야가 확장되거나 축소되는 일시적이고 예언적인 삶의 뜻밖의 순간을 시적 알레고리를 통해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찾은 기억의 순간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박경아의 회화 속 풍경은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 진실의 일부로서 현실과 필연적으로 상호 연동하는 삶에 대한 작가 개인의 인식과 세계관을 풍경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통제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 자신의 내면을 비추고 있는 이 시기의 작품들은 풍경화를 자화상으로 이해하기도 했던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가들과 비슷한 관점에서 자연을 해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몇 년에 걸쳐 박경아의 회화는 대상의 구체성이 사라지고 즉흥적인 선의 움직임과 생동감 넘치는 색채가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형태의 추상적 어휘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화면에서 대상성이 사라진 것은 그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대상을 통해 은유적으로 암시되는 인식의 세계이지 대상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인식의 범위가 강조될수록 대상성이 흐려지고 모호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대상의 구체성이

 

 

 

 

사라진 박경아의 그림은 제스처에 뿌리를 둔 형태와 컬러가 화면 위에서 유동적으로 교차하며 정서적 강렬함과 지적인 단호함이 강조된 복합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역설적이게도 이미지의 구체성이 사라진 박경아의 추상적 회화 공간에서 오히려 미지의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문학적 의미의 ‘숲’이 초기의 작품보다 더 구체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박경아의 그림이 더 이상 풍경이나 자연을 모방하는 방식이 아니지만, 자연에 대한 비전을 역동적이고 물질적이며 동시에 영적이고 지적인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된 해석을 가능하게 하여 문학적 맥락으로 통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 <Walk 워크>시리즈는 어떠한 형식이나 목적을 정해놓고 접근하는 방식이 아닌 마치 삶의 실제 순간에 대응하고 부유하는 인생이라는 “숲속을 걷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숲은 숲 그 자체의 해석이 아닌 그 숲속을 걷고 있는 주체의 인식에 의해 그 경로가 탐색 된다.

 

1974년 대구 출생의 박경아는 영남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1998년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후 2007년까지 독일에 머물며 작품활동에 전념했다. 독일에서 보낸 1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은 박경아에게 외롭고 힘든 기간이었지만 작가로서 가장 ‘나’ 다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현실에 직면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자신을 파고들었던 인생의 소중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꾸준히 회화에 몰두해 왔던 지난 25년간 박경아의 관심사는 늘 자신의 감성과 인식을 향하고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도 그릴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던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말처럼 박경아의 작품세계는 피상적인 묘사보다 감성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주체인 예술가 본인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한 예술의 척도이며 관심사인 것이다.

 

새가 노래하는지 울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적 조건과 그 순간의 정서적 심리상태에 따라 새는 울기도 하고 노래하기도 하며 우리는 자연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자연이라는 일관된 전체성을 통한 이러한 박경아의 회화적 접근방식은 추상 보편주의의 신뢰성을 잃어버린 시대에서 개인의 정서적 감수성과 각자의 삶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자각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고요한 우주적 공간에 대한 깊은 비전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여 년간 동안 박경아의 작품세계를 체계적으로 회고하는 방식이 아닌 다양하게 변화는 작품의 흐름 속에서도 작품 전반에 걸쳐 함축적으로 내재되어 궁극적으로 유지되는 작가의 숨겨진 미적 개념의 정체를 찾아가는 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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