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Object: Hun Chung Lee

13 November 2025 - 17 January 2026 Seoul
Press release

흙과 불, 그리고 몸의 언어로 예술을 빚어온 이헌정은 이번 서울, 대구 전시에서 ‘흙의 기억’과 ‘아름다움의 본질’이라는 질문을 나란히 놓는다.

서울 《Hun Chung Lee - 色 & Object》 | 《흙의 기억에 색을 입히기》는 흙이라는 물질이 지닌 시간의 층위를 ‘색’의 즉각성과 감각으로 확장하는 여정이며, 대구 《Hun Chung Lee - Jar》 | 《항아리》는 달항아리를 축으로 전통적 미의 규범을 비틀어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다시 묻는다.

 

이헌정에게 흙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몸의 기억을 저장하는 매체’다. 물레질의 반복, 흙의 저항과 순응, 불의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작가의 몸이 감지한 리듬이 기록된다. 그의 작업은 계획된 완결이라기보다 유희와 통제 사이의 진동이며,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손끝에서 즉자적으로 일어나는 체험 곧 에를레프니스(Erlebnis)에 있다. 이 과정에서 몸은 도구를 넘어 또 하나의 주체로 기능한다.

 

자연의 질서에 귀 기울이되 의지와 사유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 역시 그의 미학을 이룬다. 그는 불을 ‘제어’하기보다 ‘느끼기 위해’ 가마 앞에 앉고, 갈라짐과 변색을 실패가 아니라 생성의 과정으로 수용한다. 제어할 수 없는 흐름과 인간의 노동이 만나는 지점에서 작품은 명상적 수행으로 성립한다.

 

서울 전시에서 색채 회화는 도예와 다른 시간성을 드러낸다. 유약이 가마에서 변환되기까지의 기다림과 달리, 색은 화면 위에 즉각적으로 현현한다. 작가는 흙을 말아 올리듯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도예적 사고가 확장된 회화는 서사적 재현보다 집중과 긴장을 유지하는 수행의 궤도에 가깝고, 물레 위에서 몸이 기억한 리듬이 색의 흐름으로 전이된다. 함께 놓이는 도자 조각과 오브제는 반복된 손의 노동과 열기의 응축으로 형태화된 ‘소성된 생명’을 보여준다.

 

대구 전시에서 그는 한국적 상징인 달항아리를 새롭게 해석한다. 사회적으로 ‘아름답다’고 규정되어온 전통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하며, 표면의 굴곡과 균열, 왜곡을 통해 강요된 아름다움이 아닌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제시한다.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진실한 이 항아리들에는 흙의 숨결, 불의 흔적, 작가의 호흡이 공존한다. 이는 전통의 부정이 아니라, 이미지의 해체를 경유해 본질을 되묻는 ‘파괴로부터의 학습’에 가깝다.

 

결국 이 전시는 흙이 기억하는 시간과 인간이 감각하는 순간이 만나는 경계에 서 있다. 흙의 기억에 색을 입히는 행위는 자연과 인간, 기억과 감각, 전통과 현대 사이의 대화를 여는 문이며, 항아리는 그 대화의 형태적·철학적 응답이다. 서울과 대구를 가로지르는 이 여정은 흙과 불, 몸과 마음, 전통과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탐색하는 한 예술가의 끝없는 시소 게임이자,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지속적 사유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