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의 소리 : 그림 숲 : 김혜련

28 August - 25 October 2025 Seoul
Press release

김혜련의 회화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문화적 기억의 다층적인 층위를 가로지르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듯하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세계로 관람자를 이끈다. 화면은 단순한 시각적 재현을 넘어, 시선이 머무는 순간의 울림과 정적 속에서 발생하는 내적 대화를 불러일으킨다. 이번 우손갤러리 서울과 대구에서 각각 선보이는 《정적의 소리: 그림 숲》과 《정적의 소리: 별의 언어》는 김혜련이 오랜 시간 구축해온 ‘정적의 소리’를 서로 다른 주제와 공간에서 심화·확장하는 기획 전시이다.

 

《정적의 소리: 그림 숲》에서 김혜련은 숲을 단순한 자연 경관이 아닌, 기억과 감각, 역사적 층위가 중첩된 평행 세계로 제시한다. 전통 문양, 민속적 기호, 회화적 제스처가 현대적 맥락 속에 재배치되며, 관람자는 무심히 지나쳤던 문화적 기억과 시각적 체험을 다시 호출하게 된다. 유화 색채의 중첩과 섬세한 붓질은 숲의 밀도와 공기, 빛의 떨림을 구현하며, 숲을 존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변환시킨다.

 

《정적의 소리: 별의 언어》에서는 시선을 숲 너머로 확장한다. 여기서 별은 단지 천상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또한 하나의 별이라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김혜련은 별을 먼 우주의 이야기로 한정하지 않고, 현재 우리가 속한 장소와 문화가 세계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별이라는 단어는 고정된 상징이 아닌 색채·질감·형태의 흐름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우리의 언어가 경계를 넘어 닿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지를 드러낸다.

 

브리타 슈미츠(Dr. Britta Schmitz)¹는 「시간의 안과 밖」 이라는 글에서 작가 김혜련을 ‘형태’의 문화적·역사적 기원을 탐구하는 작가로 규정한다. 그녀는 김혜련이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서구 추상미술 전통과 한국의 문화 자산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왔다고 보았다. 김혜련이 세계 각지의 박물관과 유적지, 고고학 현장을 답사하며 보편적 시각 언어를 수집하고 이를 동시대의 맥락 속에 재배치하는 과정은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창조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라고 보았다. 반구대 암각화를 모티프로 한 고래 연작과 대형 직물 작품들은 개인적 기억과 집단적 기억이 색채와 물질을 통해 구현되고, 이를 통해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정신적 공간까지 확장되는 시각적 경험을 제시한다고 평가한다.

 

 게르하르트 샤를 룸프(Dr. Gerhard Charles Rump)²는 김혜련의 회화를 ‘시간과 공간을 매개로 한 정신적 공명(Resonance)’으로 해석한다. 김혜련의 화면은 완결된 구조 속에서 역사적 기억, 물질적 형식, 심리적 반응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이는 동서양의 미학 전통이 충돌이 아니라 합류의 방식으로 만나는 장을 형성한다고 그는 평가한다. 특히 색채 운용과 구성 방식이 단순한 미적 차원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접점’을 시각적으로 번역한다고 그는 평가하며, 이러한 접점은 관람자가 자신이 속한 문화와 타문화를 성찰하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번 전시는 서울과 대구, 두 도시의 두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각 경험을 제공하지만, 그 깊은 곳에는 공통된 기획 의도가 있다. 그것은 예술이 단절된 시공을 연결하고, 우리가 속한 이 별 위의 삶과 문화가 서로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김혜련의 회화 속 ‘정적’은 비어 있는 공허가 아니라, 수많은 색채와 형태, 문화적 기호가 응축된 ‘풍부한 고요’이며, 관람자는 숲속에서, 하늘과 별빛 아래에서, 혹은 그 경계 어딘가에서 이 고요에 귀 기울이며 자신이 속한 세계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¹ 브리타 슈미츠(Dr. Britta Schmitz)는 독일 현대미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미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로, 특히 베를린의 주요 미술 기관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기여해왔다. 베를린 신국립 미술관 연구관을 거쳐 1996년 개관한 베를린 함부르거반호프 현대미술관의 주요 창립 위원이자, 2016년까지 수석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독립 큐레이터로서 활동하고 있다.
² 게르하르트 찰스 룸프(Dr. Gerhard Charles Rump)는 독일 출신의 미술사학자이자 전시 기획자, 작가, 그리고 예술 사진가이다 Die welt 등 주요 언론에서 오랫동안 미술시장 전문 편집자로 활동하며, 예술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이론, 기호학 분야에서 깊이 있는 글쓰기로 주목받았다. 학계와 언론, 예술 현장을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해왔으며, 2011년에는 가상 예술 프로젝트이자 실험적 전시 플랫폼 RAR Gallery 베를린, 뉴욕, 팔로알토)를 공동 설립하여 국제적인 예술 담론 형성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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